[마중 인터뷰] 마을미디어 대표선수를 만나다 1회 – 강북FM 김일웅 총괄 PD <1부>


[편집자 주] 2017 마을미디어 성과모델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매체로 자리 잡은 마을미디어의 성장과정을 정리해본다. 인터뷰어는 창신동라디오덤 조은형 국장이 맡았다. 이 인터뷰는 총 15회에 걸쳐 진행되며 그 첫 번째 인터뷰 대상은 지난해 마을미디어 대상을 수상한 강북FM이다. 김일웅 총괄 PD와의 인터뷰를 1, 2회에 나눠서 싣는다.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가 처음 만난 마을미디어 대표선수는 강북FM 김일웅 총괄 PD이다. 강북FM은 다채로운 콘텐츠로 라디오를 진행함은 물론 주민들의 커뮤니케이션 권리 확대를 위한 미디어 교육, 청소년 미디어 체험 프로그램에도 적극적이다. 그리고 지난 6년, 지역 자원을 알차게 활용하며 풍부한 경험과 네트워크를 쌓아왔고 지역과 함께 자라는 마을미디어로 자리매김했다.

겉으로는 활기찬 듯 보이지만 사실 마을미디어는 언제나 과도기이다. 참여자 모집에 애를 먹고, 인력난에 시달리고……. 지난 6년, 강북FM은 수많은 위기에 봉착하면서도 여전히 더 나은 방송국을 만들기 위한 고민을 쉬지 않는다. 수 없는 고민과 도전의 결과일까. 강북FM은 2017년 현재 무려 아홉 개의 방송과 각종 교육을 진행 중이다. 2016년 서울마을미디어축제에서 마을미디어 대상을 받기도 했다.

선선한 바람과 따스한 햇볕이 기분 좋은 가을날, 절정을 향해 달려나가는 강북FM 김일웅 총괄 PD를 만나보았다. 올해 활동 6년 차에 접어든 강북FM이 지난 역사를 돌아보며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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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동라디오덤 팟캐스트
http://www.podbbang.com/ch/4565?e=22397876

▲왼쪽부터 조은형(창신동라디오덤), 김일웅(강북FM)

 

눈물주의, 6년차 활동가의 고난과 역경

 

조은형(창신동라디오덤 방송국장, 이하 조): 김일웅 총괄 PD님은 강북FM 초기부터 활동하셨죠? 무려 6년 동안 마을미디어를 일궈온 분입니다. 올해 7월까지 마을미디어 네트워크 공동간사로 활약해주셨는데요. 본인 말씀에 의하면 ‘엄밀함’을 담당해주셨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지역에서도 다양한 네트워크 활동을 펼치고 계신데요, 먼저 본인 소개 부탁드려요.

김일웅(강북FM 총괄PD, 이하 김): 강북FM 총괄 PD, 북한산 반달곰 김일웅입니다.

조: 바로 이야기 시작하겠습니다. 초기부터 지금까지를 돌아볼 때, 운영자마다 본인의 활동을 정리하는 방식이 다양할 거 같아요. 지난 6년을 어떻게 정리하시나요?

김: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을 거 같아요. 국어시간에 배운 것처럼, 발달-전개를 지나 절정을 꿈꾸는 단계인 거 같아요. 도약할 수 있는지는 올해와 내년에 달려있지 않을까요? 발단을 떠올리니 암울하네요. 작년에 부산에서 열린 마을미디어 네트워크 모임에서 ‘실패한 경험 있는 서울 지역 마을미디어’ 섭외를 요청했는데, 강북FM이 선택되었어요. 첫 해엔 두 차례 ‘우리마을미디어문화교실’에 참여했는데 참여자가 거의 안모였어요. 게다가 지속적으로 활동을 하겠다는 분이 없어서 좌절했던 기억이 나네요. 모든 주민이 직접 만드는 미디어가 매력적이고 가능성이 많다고 봤는데, 다른 분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는 생각에 좌절했던 거 같아요.

조: 네트워크를 꽤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참여가 많지 않았나 봐요?

김: 첫 해엔 라디오를 고집하지 않았어요. 첫 해이니 만큼 ‘우리 마을에 맞는 미디어를 알아보자’는 콘셉트였죠. 여러 단체와 함께 활동을 기획해서 한 단체에 한 명씩 보내주기로 했는데 지역 활동이 워낙 바쁘잖아요. 각자 활동하기도 빠듯해서 지속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네트워크가 많은 게 크게 영향을 미치진 못했어요.

조: 초기엔 강북FM이 아니라 ‘강북마을모임’, ‘삼각산 재미난마을’, ‘작은도서관 함께놀자’ 등 다양한 이름으로 사업에 지원하셨는데요, 다양한 이름이 험난함을 반영하는 거 같네요. 사람들이 모이지 않아서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었을까요?

김: 사업을 진행하기가 민망한 거죠. 돈도 다 쓸 수 없고. 모집인원 자체도 적었고요. 시간대나 공간을 바꾸는 시도도 여러 번 했는데 그래도 사람이 안 모여서 정말 안되는 건가, 싶었죠. 사업 신청 시기가 왔을 때 고민이 많았어요. 안될까봐 걱정이 됐죠.

조: 그 민망함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활동을 이어가셨네요. 고민이 많았을 거 같은데, 그런 결정을 내리게 한 힘이 뭘까요? 특별한 끌림이 있었나요?

김: 오기가 생겼어요. 안 된단 말이지? (웃음) 그리고 힘들어도 제가 재미를 느끼는 과정이 있었기에 계속 할 수 있었어요. 난 여전히 재밌고 가능성을 보고 있으니, 해보자! 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저는 뭘 해도 3년은 해봐야 한다는 걸 신조로 가지고 있어요. 3년 차에 이번에 망하면 그만 두겠다고 마음먹긴 했죠. 당시엔 강북구에 마을미디어를 뿌리내리자는 불타는 사명감까지는 없었고, 오기로 했던 거 같습니다.

조: 마을미디어 첫인상이 용기를 낼 만큼은 매력적이었나 봐요. 그리고 PD님의 뚝심이 정말 한 몫 했네요. 여기가 발단이고, 2013년에 상황이 달라진 거네요?

 

마을미디어는 동료가 필요해 3 & 3의 법칙

 

▲2016년 서울마을미디어 대상

 

김: 그렇죠. 당시 초동 멤버가 아직까지 남아있으니까요. 사실 그때도 삐걱거렸어요. 보조강사님 일정에 맞췄는데 계속 안 나오기도 했고. 그래도 참여 인원이 늘었고, 초동 주체로 저와 동갑내기 두 명, 총 세 명이 남았어요. ‘3의 법칙’이 있잖아요. 세 명이 주체로 있으니 순탄하게 방송을 만들 수 있었어요. 교육 마치고 2013년 하반기부터, 적은 수이긴 하지만, 드문드문 방송을 만들었어요. 돌아가며 진행도 하고요. ‘망함’을 벗어나는 터널의 끝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조: 1, 2회 미디어 교실 이후 3기에서 초동 주체가 탄생한 건데, 운영 주체로서 특별한 조처를 취한 게 있나요?

김: 마을미디어에 대한 익숙함과 인지도의 차이 아닐까 싶어요. 홍보를 꾸준히 하다 보니 현수막을 보고 오기도 하더라고요. 공모사업도 영향이 있었던 거 같아요. 당시 청소년 영상제작팀이 함께 사업을 신청했는데 그 팀이 떨어졌어요. 그래서 같이 하자고 제안해서 공간도 빌려 쓰고 서로 방송에 출연도 하면서 재미있게 방송했어요. 운영자로서 특별한 조처를 취한 게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신의 가호인 거 같기도 합니다.

조: 마을미디어 공모사업이 영향을 미쳤네요. 2회 동안 진행하며 마을미디어가 주민들에게 익숙해진 것도 있고, 공모사업을 통해 지원자들이 연결되었으니까요. 그리고 초동 주체가 동갑이라는 강점도 있었나요?

김: 분명 있는 거 같아요. 술 먹으며 의기투합도 하고 (웃음). 함께 하는 분들은 동네에서 동갑 만난 게 처음이라고 굉장히 좋아하시더라고요. 분명 긍정적인 영향을 준 거 같아요.

조: 발단 단계에 있는 단체에게 조언할 게 있나요?

김: 2년은 해보겠다는 각오는 있어야 할 거 같아요. 초기일수록 버티고 부여잡고 있는 한 명이 중요한 거 같아요. 초기엔 조직이 만들어진 게 아니니까 중심 잡는 사람이 필요해요. 함께 할 사람이 있으면 좋죠. 한두 명이 함께하면 차원이 달라요. 나의 뚝심은 물론이고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중요한 거 같아요. 참여자 모으는 특별한 비법은 없어서 말씀 드릴 게 없네요.

조: 초기엔 인내하는 게 필요한 거네요.

김: 제일 좋은 건 같이 시작하는 거죠. 처음엔 낯선 활동이기 때문에 관심 있는 사람도 못 찾았어요. 지금은 환경이나 인식이 바뀌었기 때문에, 발단 단계에 있으면 사람 만드는 작업부터 시작하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도전을 통한 성장① – 교육의 중요성

 

조: 초동 주체가 생기고 상황이 많이 바뀌었을 텐데, 본격적으로 전개 이야기 들려주세요. 첫 인터뷰이가 된 이유기도 할 텐데, 작년에 마을미디어 대상을 수상하셨어요. 그 힘이 뭘까요?

김: 불쌍해서 주셨나?(웃음)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해본 걸 높게 평가해주신 거 같아요. 어린이 체험프로그램 시작한 팀이기도 하고 시즌제 콘텐츠도 시도했으니까요. 공개방송도 지금은 많이 하지만 저희는 초기에 많이 시도했고요. 나름의 기획과 시도는 원 없이 해봤네요. 발단이 힘들었기 때문에 앞으로 참여자 확대가 중요한 전략일 거라 생각해요. 작년부턴 자체 교육을 1년에 4번, 4차시 커리큘럼으로 진행하는데 신청자가 적어도 지속적으로 참여자가 있어요. 교육 때마다 콘텐츠 하나는 남아요. 더 많은 주민들이 참여하게 하는 것에 방점을 찍고 있어요.

조: 신의 계시가 아니었나 싶은데, 현수막 같은 게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친 거 같네요. 창신동도 해가 갈수록 현수막이나 홍보물만 보고 오는 분들이 생기더라고요.

김: 홍보 통해서 인지도 쌓이는 건 확실한 거 같아요. 다음 해 4기 교육을 했을 땐 10명 넘게 오셨어요. 왜 이렇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4기 때 지금 강북FM의 주축인 나종이 아나운서가 교육을 받으러 왔어요.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왔다고 다들 좋아했어요. 시기적으로 잘 맞았던 거 같아요. 초동 주체들이 뭔가 해보겠다는 의욕이 있었는데 큰 원군이 들어온 거죠. 당시 방송을 두 개 정도 시작할 수 있었어요. 질적, 양적으로 발전한 시기죠. 2015년엔 교육형으로 진행하며 구성에 변화를 줬어요. 원래 커리큘럼이 12차시, 세 달 과정으로 구성되었는데, 신청자 입장에서 부담이 클 거라 느꼈어요. 그래서 교육 시작 전 두 차례 체험 프로그램을 배치한 후 교육 듣고 싶은 분들 신청을 받았어요. 서너 분 정도는 교육까지 받으셨어요.

조: 청소년들과의 네트워킹도 대단하시잖아요.

김: 진로직업체험은 일정이 겹치지 않는 한 다 받아요. 재작년부터 청소년 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 의미 있는 일인 거 같아요. 대단한 걸 하진 않지만, 미디어가 전문가만의 영역이 아니고 누구나 마이크 잡아볼 수 있다는 걸 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미디어 체험 공간이 우리 집 근처에 있다는 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거 같아요. 작년에 혁신교육 사업으로 청소년 연합 동아리를 했었어요. 중학생 프로그램이었는데, 중학교 1학년이던 친구들이 2학년까지 계속 진행하는 경우도 있고요. 고등학생은 더 드라마틱해요. 중3때 강북FM에 체험학습으로 왔는데 너무 재밌고 계속해보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요. 선생님 통해서 연락을 받았는데, ‘혼자 하기 힘드니까 두 명 정도 더 데리고 오라’ 했더니 친구들 두 명 더 데리고 왔더라고요. 진로 프로그램은 형식적이고 단기적인 경우가 많아요. 돈은 얼마나 버냐고 물어서 난감하기도 하고요. (웃음) 그래도 이렇게 방송에 흥미를 느끼고 계속 해보고 싶다고 마음먹는 학생이 있잖아요. 청소년들에게 미디어를 접할 기회를 주는 거. 이게 마을미디어 존재 의의가 아닐까요. 체험학습이 끝나면 학생들이 엽서를 보내는데 그거 읽는 재미도 쏠쏠해요. 분명 시켜서 썼겠지만, 뿌듯하고 고마워요.

▲왼쪽부터 김일웅(강북FM), 채우석(강북FM), 조은형(창신동라디오덤)

조: 초·중·고등학생에 맞게 교육 커리큘럼을 개발하고 분기별로 교육을 실시하는 게 보통일이 아닌데. 확실한 강점인 거 같아요. 촘촘한 교육 시스템을 기반으로 젊은 층이 유입 되는 건 당장 성과는 보이지 않지만 씨앗이 되고 결실이 된다고 생각해요.

김: 올 연말엔 중고등학생 연합공개방송을 해볼까 구상하고 있어요. 사실 중고등학생, 어린이 프로그램은 저희가 자체적으로 기획한 것 아니에요. 동네에 방송국이 있다는 걸 아니까 진로 체험 요청이 많이 들어오더라고요. 강북FM의 경우 혁신교육 사업으로 방과 후 배움터, 청소년연합동아리 활동을 했는데 활동가분들이 지역 자원과 적극적으로 네트워크 하시면 좋겠어요. 또 저희가 운이 좋은 게, 동갑내기 초동주체가 혁신교육지부 사무국장으로 갔어요. 함께 활동했던 친구니까 미디어 사업 관련해서 연락을 주고 있어요. 시간이 지나며 경험도 쌓여가고 커리큘럼도 체계화되고 있네요.

조: 초등학생 체험 프로그램은 엄마들이 관심을 가졌을 거 같아요. 청소년의 경우 저희도 감동을 받을 때도 있어요. 청년활동가가 공개방송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사람을 모아 콘서트 열어주자고 해서 방송국에서 콘서트를 연 적이 있어요. 좁은 방송국에서 락 콘서트를 열었을 때 정말 행복했어요. 이후에 청소년지역아동센터에서 노래 연습하는 친구들에게 “초청가수로 올래?” 물었더니 오겠다고 해서 그때 데뷔를 했어요. 끝나고 가는 길에 다른 친구들이 “우리도 콘서트 해주면 안 돼?” 라고 묻더라고요. 그때 소름이 쫙 돋고 너무 행복했어요. 청소년들이 뭔가 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일은 긴 호흡으로 봤을 때 굉장히 의미 있다고 봐요.

김: 맞아요. 또, 청소년들이나 어린이들을 만나며 동네에서 인간 대 인간으로 관계 맺는 경험을 하는 거 같아요. 마을 교사 활동을 하니 관계 고리가 여러 개로 펼쳐나가기도 하고요.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거죠. 요즘 정말 착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웃음)

 


정리: 김푸른
사진: 이혜진
녹음·편집: 채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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