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 인터뷰] 마을미디어 대표선수를 만나다 6회 – 용산FM 황혜원 방송국장 <1부>


[편집자 주] 2017 마을미디어 성과모델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정기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매체 형태의 마을미디어들의 성장과정을 정리해본다. 이 프로젝트의 인터뷰어는 창신동라디오덤 조은형 국장이 맡았다. 1회 강북FM, 2회 강서FM, 3회 와보숑, 4회 동작FM, 5회 성북동천에 이어 6회 인터뷰 대상은 용산FM이다. 황혜원 방송국장과의 인터뷰를 1, 2부로 나눠서 싣는다.


 

▲황혜원 방송국장 (용산FM)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가 만난 여섯 번째 대표선수는 용산FM 황혜원 방송국장이다. 황혜원 국장은 용산 지역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더 나은 지역사회를 위해 마을모임 종점수다방을 만들었고, 이는 마을미디어 활동으로 이어졌다. 올해로 활동 6년 차에 접어든 용산FM은 지역의 특성을 담아낸 다채로운 콘텐츠를 기획하고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주력하는 지역밀착형 방송국이다. 동료에 대한 애정 또한 남다른 황 국장은 용산FM의 도약 요인으로 ‘사람’을 꼽는다. 방송 조기 종영, 팀원들 간 불협화음 등 숱한 고민과 갈등이 있었지만, 고민을 나누고 머리를 맞댈 동료가 있었기에 극복할 수 있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용산FM은 최근 새로운 공간에 둥지를 틀었다. 새로운 공간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것을 일구어낸 지난 시간을 돌아보았다. 마을활동가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황혜원 국장의 진솔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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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FM 팟캐스트

http://m.podbbang.com/ch/episode/7604?e=22441898

 

원룸에서 출발해 방 세 개짜리 방송국을 만들다

조은형(창신동라디오덤 국장, 이하 조): 새 공간을 마련하셨어요. 조그만 다락방 같던 곳에서 방이 무려 3개나 되는 곳으로 이사 오셨는데, 어떻게 마련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황혜원(용산FM 방송국장, 이하 황): 공간 이전은 오래전부터 계획되어있어요. 건물주가 보증금까지 들고와서 나가라고 했는데, 1년간 버티다가 결국 이전했어요. 원룸에서 방 세 개짜리 빌라로 이사 왔어요. 마을 공간지원사업까지 사라져서 후원주점을 열어 리모델링 비용을 마련했어요. 지난 공간은 작지만 입지가 좋았고, 이번 공간은 방이 무려 3개라 좋아요. 후원자, 활동가,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관계자분들에게 감사하죠.

조: 감회가 남다르실 텐데 두 공간을 비교하면 어떤가요?

황: 종점수다방은 후암동 종점 버스정류장 바로 앞이라 접근성도 좋고 왕래가 잦았어요. 해방촌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서 후암동은 물론 해방촌과 연계된 활동이 가능했고요. 6년의 세월만큼 많은 사람을 만나고 우리를 키워준 곳이에요. 이번 공간은 조용한 주택가에 있는데, 업무집중력이 높아서 만족스러워요. 다만, 노출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어서 홍보를 잘해서 보완해야 합니다.

 

▲왼쪽부터 조은형(창신동라디오덤), 황혜원

 

처음엔 멋모르고 시작…2014, 2015, 2016년 매해 한 단계씩 도약

조: 용산FM의 발전 과정을 시기별로 구분한다면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요? 단체의 발전과정에 대한 진단 부탁드립니다.

황: 2012년 서울마을미디어 문화교실을 통해 활동을 시작했는데, 2013년까진 마을미디어를 맛보는 시기였어요. 2012년에 시작할 때는 멋모르고 했어요. 첫 번째 문화교실을 마치고 방송 세 개를 진행했지만, 마을미디어 자체에 대한 고민이 없었어요(웃음). 각자 하고 싶은 방송을 만들어온 시기라고 봐요.

제1도약기는 마을미디어 문화교실을 통해 라디오 방송을 시작한 2014년이에요. 음악방송을 시작했고, 필리핀 이주민 주도로 타갈로그어 방송 <필리피노 라이프 인 코리아>도 시작했어요. 이때는 용산FM의 방향을 고민하며 활동한 시기이기도 해요. 참여자들이 모이는 시간을 자주 만들어 나갔어요.

2015년이 제2도약기인데, 젊은 진행자를 만날 수 있었어요. DJ 모집 현수막을 보고 찾아오셨어요. 해방촌이 도시재생 지역으로 선정되고 지역커뮤니티와 연계한 방송도 시작했어요. <십대별곡> 방송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016년은 제3도약기라고 볼 수 있어요. 홍보활동을 활발히 진행한 시기이고, 그림 그리는 분이 청년활동가로 오셔서 득을 크게 봤어요. 지역 현안을 중점으로 두고 활동한 시기이기도 해요. 역사방송도 시작했고, 용산 화상 경마장 폐쇄를 위해 싸우던 시기입니다. 미디어가 할 수 있는 걸 고민하다 <굿바이, 화상 경마장!>이란 방송을 진행했어요. 싸움에 참여했던 분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려고 했는데 덕분에 관계자도 많이 만났고, 올해 화상경마장 폐지되는 데 일정하게 기여했다고 봐요.

그리고 2017년은 질적으로 도약할 수 있는 시기인 거 같아요. 번듯한 녹음실도 갖추고 커뮤니티 공간도 갖췄어요. 인근에 후암전통시장이 있는데, 공개방송을 하게 되었어요. 특별한 만남을 이뤄냈고요. 이사한 공간에서 안정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조: 매해 도약했다고 평가하시네요. 깊이도 있고 폭도 넓어진 것이라고 느껴지네요.

황: 이전엔 마을미디어 활동을 ‘각자 하고 싶은 방송을 하는 것’ 이라고 여겼어요. 동아리적인 성격이 강했죠. 2013년까지 동아리적 방송 운영이 지배적이었지만, 2014년 마지막 마을미디어 문화교실을 하고 질적으로 도약했어요. 이 시기에 용산FM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거든요.

조: 처음엔 하고 싶은 방송을 했다면, 2014년 이후엔 단체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하신 건데, 방송을 지속할 수 있는 팁이라고 생각해요.

 

참여자들과의 불협화음, 지향 달라 어려움 겪기도

조: 도약만 있었을까 싶은데. 외적으로 방송 숫자가 늘어나고 개인방송에서 지역 현안을 다루는 미디어의 특성을 갖춘 흐름으로 왔는데, 어려움이 있었나요?

황: 2013년까진 청년활동가가 없었어요. 2014년에 접어들며 누군가 있어야겠다고 판단했고, 서울시 뉴딜 일자리를 신청했는데 떨어져서 한 분을 자체적으로 고용해서 활동했어요. 팀원들 간 활동에 대한 상이 다르고 평가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불협화음도 있었어요.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는데, 제가 운영에 미숙했던 거 같아요.

조: 개개인의 싸움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합의하고 소통하는 훈련이 안 되어있는 게 근본적인 문제인 거 같아요. 공동의 가치를 규정한 게 없는 조직이기 때문에 생기는 혼란인 거 같아요. 그렇지만 서로 다른 지향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마을미디어의 핵심인 거 같아요,

황: 발전 방향을 분명히 했다면 덜 삐거덕거렸을 텐데. 잘해보자는 생각만 그득했지 뭘 어떻게 해보자는 생각은 부족했어요.

▲황혜원 방송국장

용산FM의 전신, 종점수다방으로 마을활동 시작

조: 황혜원 국장님은 어떻게 마을미디어 활동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황: 종점수다방으로 마을활동을 시작했어요. 이름 그대로 종점에 있는 수다방이에요. 지역에서 어머니와 아이들을 만나고 싶어 만든 공간이에요. 저도 학부모지만, 아이들이 쉴 수 있고 엄마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랐어요. 2012년에 서울시 우리마을미디어문화교실을 시작하고 공방, 벽화, 미술수업을 진행했어요.

조: 프로그램으로 결합하신 분들 이외 운영진 있었나요?

황: 재능기부를 많이 받았지만, 운영진이라는 이름으로 결합하진 않았어요.

조: 개인적으로 구성하고 운영하신 거네요. 입지조건 좋은 곳에 공간을 만들고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역사회와 관계를 만들어오셨네요.

황: 마을 장터도 열고 해방촌과 열심히 결합했어요. 우리마을미디어문화교실 이외 활동도 많이 했어요. 당시 해방촌이 뜨기 시작하며 동네가 상권화 된다는 우려가 감지되었고, 주민모임이 필요해서 주민협의체 준비위원회를 만들었었어요. 밥상 모임을 통해 정보도 공유하고 우려도 나누고. 힘은 없었지만 만남과 공유 중심이었어요. 다양한 활동을 했던 곳이에요.

조: 지역에서 주민들이 모여 뭔가 해야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네요. 지역 현안에 위기의식을 느낀 거네요.

황: 첫 출발은 그래요. 해방촌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있었어요. 모임을 가져간 이유죠.

▲조은형 진행자

공방 활동으로 한계…라디오로 프로그램 차별화

조: 마을미디어에 도전하게 된 이유는 뭔가요?

황: 우리마을미디어문화교실을 하면서 <엄마와 딸의 동상이몽>이라는 방송을 했어요. 2015년 4월까지 진행했으니, 70회 넘게 진행했어요. 딸이 대입을 앞두고 종료하게 되었는데, 제가 지금까지 마을미디어 활동을 하게 된 이유가 이 방송 때문이에요. 방송을 하는 기쁨을 누렸어요.

조: 첫 시작 동기는 해방촌에 대한 걱정, 방송을 지속하게 되는 힘은 방송의 즐거움 때문이네요.

황: 종점수다방에서 공방 활동을 하며 한계를 많이 느꼈어요. 그런 프로그램은 우리보다 더 짜임새 있게 운영하는 곳이 많으니까요. 이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때 라디오를 만나게 되었어요.

조: 복지 차원에서 문화프로그램을 돌리는 것과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어설프게나마 해보는 건 다른 거 같아요. 전문가들에 의해 쉽게 참여 가능하니까요.

황: 마을미디어는 관계를 지속해서 만들어나가는 데 도움이 되는 거 같아요. 주체적으로 참여 가능하고요.

조: 마을라디오를 시작하는 단계에서 주변에 정보를 구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황: 관악FM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라디오는 처음 시도해본 건데, 얼굴도 안 보이고 말만 하면 다 할 수 있지 않을까 했어요(웃음). 착각이었죠.

조: 다른 미디어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긴 하죠.

황: 선배단체가 후발단체에 도움을 준다는 건 큰일 인 거 같아요. 관악FM이 도움을 많이 줬어요. 그리고 당시 함께 활동했던 이효성 활동가의 도움이 컸죠. 함께 할 동료가 있었으니까요. 목공을 하는 분이라 당시 책꽂이 같은 걸 만들어주거나 아이디어도 많이 줬어요.

조: 환상의 조합이었네요. 실무적으로 도움을 줄 동료도 있고, 선배단체의 도움도 받았으니.

 

2부에 계속>>

 

정리: 김푸른
사진: 박재경
녹음·편집: 김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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