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 인터뷰] 마을미디어 대표선수를 만나다 9회 – 창신동라디오덤 조은형 방송국장 <1부>


[편집자 주] 2017 마을미디어 성과모델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정기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매체 형태의 마을미디어 성장과정을 정리해본다. 1회 강북FM, 2회 강서FM, 3회 와보숑, 4회 동작FM, 5회 성북동천, 6회 용산FM, 7회 마을미디어 뻔, 8회 은행나루마을방송국에 이어 9회 인터뷰 대상은 이 프로젝트의 인터뷰어를 맡아온 창신동라디오 덤이다. 창신동라디오덤편의 인터뷰어는 용산FM 황혜원 국장이 맡았다.

▲ 조은형 창신동라디오덤 국장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가 만난 아홉 번째 대표선수는 창신동라디오 덤 조은형 국장이다. 라디오 방송은 물론 오프라인 문화 행사에 심혈을 기울이는 창신동라디오 덤은 지역 주민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기획에 초점을 둔다. 2012년 라디오 교실을 시작으로 2017년 현재 주민 음반제작, 봉제인 문화제 및 간담회, 꼭대기 장터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모두 봉제인이 많은 창신동의 특징을 고려한 기획이다. 방송국 활동은 ‘창신동의, 창신동에 의한, 창신동을 위한 것’이라 봐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창신동라디오 덤은 지역사회 든든한 매개자이자 지역의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물론 마을에 굳건히 뿌리내리는 과정은 녹록치 않았다. 운영자로서 수많은 진통과 갈등을 겪었고 한계가 많다면 많은 작은 ‘동’단위 마을미디어지만, 나름의 돌파구를 찾으며 더욱 단단해졌다. 늘 지역에 멍석 까는 역할을 자처하며 이웃이 행복하길 바란다는 조은형 국장의 이야기를 통해 지역사회에서 마을미디어의 역할을 모색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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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동라디오 덤 팟캐스트
http://www.podbbang.com/ch/4565?e=22459343

 

<마을미디어 대표선수를 만나다>, 이번엔 ‘창신동라디오 덤’이다!

황혜원 (용산FM 국장, 이하 황): <마을미디어 대표선수를 만나다> 프로젝트의 고정 인터뷰어 조은형 국장님을 인터뷰하게 되었네요. 그동안 여덟 번에 걸쳐 인터뷰를 진행하셨는데, 소감이 궁금합니다.

조은형 (창신동라디오덤 국장, 이하 조): <마을미디어 대표선수를 만나다> 프로젝트는 15개 팀을 만나야하는데, 벌써 중반을 넘어섰네요. 아직 여섯 팀을 더 만나야 합니다. 올해 프로젝트 진행을 맡는 게 현실적으로 과한 욕심인데, 이 여파를 창신동라디오 덤 식구들이 온몸을 커버해주고 있어요. 정말 고맙습니다(웃음). 식구들은 욕심부린다고 혼내겠지만, 정말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6년 동안 창신동에 콕 박혀 지낸지라, 다른 지역 상황에 어두웠거든요. 각 방송국이 다양한 고난과 고비 속에서 나름의 해결책을 찾아가는 걸 보니 보물을 찾는 기분입니다. 그리고 우리 방송국과 비교를 하게 되니, 창신동라디오 덤의 특징도 분명히 인식하게 되고요. 시야도 넓어지고, 지역 상황에 맞는 전략을 세우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깨닫고 있어요. 모두 열심히 사는 모습이 멋지고, 동지애도 생깁니다.

황: 이후 방향을 모색하는 데 큰 힘이 될 거 같습니다. 정말 하길 잘하셨네요.

▲ 왼쪽부터 조은형 박준만(창신동라디오덤), 황혜원(용산FM)

마을 현안에 관심 가지며 지역에 뿌리내려… 마을의 매개자로 자리매김

황: 창신동라디오 덤은 2012년 교육을 시작으로 2013년 개국을 했는데, 그동안의 역사를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요? 큰 변화를 겪었던 시기를 중심으로 이야기해주세요.

조: 교육 이후 개국을 하고 이런저런 시도를 하던 초창기엔 굉장히 신났어요. 2012년부터 2013년까지가 제1시기이고, ‘신나 신나 시기’라고 표현할 수 있겠네요. 잘 알던 사람이라도 마이크를 주면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자기표현을 하는 걸 보며 멍석효과에 앞도 되었던 시기에요. 2015년도까지가 제2시기인데, 마을특성을 담은 다양한 시도를 하고 마을 현안에 관심을 가진 시기입니다. 이때 봉제인이 많은 창신동의 특징을 살린 활동을 해왔어요. 봉제인 간담회나 음악회도 열고, 공장을 찾아다니며 영상도 제작하고 소식방송도 진행했습니다. 제3시기는 2016년, 바로 작년인데, 한계를 직시하며 고민이 많던 시기입니다. 활동의 정체성, 조직운영, 공간, 콘텐츠에 대한 고민이 주를 이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를 많이 했어요.

2017년 현재는 지역에 뿌리내린 시기라고 봐요. 운영자로서 생각이 정리되며 대학원 입학도 했고, 주민 음반제작을 하며 멍석 까는 능력이 향상되었어요. 참여자의 만족이 후원으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방송의 영향력이 크지 않지만, 지역의 문화로 확실히 각인되었습니다. 주민들이 큰 부담 없이 방송 경험을 할 수 있는 게스트 시스템도 마련했습니다. 무엇보다 마을미디어가 지역에서 중간 역할을 하며 갈등 해소에 기여했어요. 제가 도시재생 주민협의체, 창신마을 넷, 주민자치위원 등 다양하게 발을 걸치고 있거든요. 오해나 루머로 갈등이 생기곤 하는데, 방송국이 중간 역할을 확실히 하며 지역 토양에 뿌리를 내린 시기라고 봅니다.

황: 2013년까지가 신나는 제1시기, 2015년까진 마을 특성을 담은 다양한 활동을 해온 제2시기, 2016년까진 조직운영과 지역현안 다루는 법을 고민한 제3시기, 2017년은 지역에 맞는 덤의 역할을 찾아가며 뿌리내리는 시기라고 정리할 수 있겠네요. 창신동라디오 덤을 떠올리면 ‘멍석’이 생각나요. 어떻게 멍석을 깔까 초기부터 고민을 하셨고 방법도 진화해왔네요. 사람을 어떻게 만날까 늘 고민하시는 거 같습니다.

조: 덤 멤버들이 온몸으로 함께하고 있기에 가능한 거 같아요. 늘 감사합니다(웃음).


▲ 창신동라디오덤

지역아동센터 교사, 영상제작자를 거쳐 방송국 국장으로.. 지역 특성 고려해 라디오 선택

황: 어떻게 활동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원래 미디어 활동에 관심이 있었나요?

조: 2003년에 지역아동센터 교사로 활동하며 창신동과 접점이 생겼어요. 야생적인 아이들의 모습에 반해서 시작하게 되었죠. 교사는 학부모와 자주 만날 수밖에 없는데, 학부모님들을 통해 아이들이 다시 보였어요. 학부모 대부분이 봉제인인데 장시간 노동을 하고 일주일에 딱 한 번, 일요일에만 쉴 수 있어요. 그 구조에서 자녀들의 특성이 보이더라고요. 그리고 이분들과 재미난 걸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지역에 대한 애정이 깊어졌어요.

미디어 활동과 관련해서는, 한겨레 문화센터와 미디액트에서 다큐멘터리 교육을 받았어요. 취미 삼아 하다가 나중에 영상제작자로 전업하게 되었어요. 다큐멘터리 감독을 꿈꾸긴 했는데, 그때 이미 30대였어요. 독립다큐멘터리를 만들려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지역아동센터 교사 월급이 워낙 박봉이라 어쩔 수 없이 접었습니다. 상업영상 제작을 하다가 주말만이라도 밥벌이 말고 나와 이웃의 삶에 활기를 불어놓는 아름다운 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봉제인분들이 주로 라디오 들으며 일을 하시니까 라디오를 선택했고, 2012년에 마을미디어 사업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황: 아이들을 통해 부모가 보이고 동네가 보였다는 게 인상적이네요. 그리고 ‘이것이 나의 할 일이다!’ 라고 마음먹고 방송국을 시작하신 게 대단합니다. 정말 적임자네요.

조: 교사 시절도 즐거웠어요. 그렇지만 집중해서 작품을 만들고 싶은 욕구가 있었어요. 방송국 생활은 사람들과 협업하는 기쁨, 집중해서 작품을 만드는 기쁨이 다 충족되는 거 같아요. 지금은 라디오라는 매체보단 공동체성에 주목하는 운영자인 거 같습니다.

황: 초기 주체는 어떤 분들인가요?

조: 초기 멤버는 1, 2기 라디오 교실 수료생이에요. 1기 분위기가 굉장히 좋았어요. 그렇지만 아무리 즐거워도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건 다른 문제잖아요. 그런데 참여자 중 ‘일단 시작했으니, 해보자!’며 힘 있게 이끌어주신 분이 계셨어요. 모두 일요일만 쉬는 봉제인인데, 쉽지 않은 결정이었죠. 하지만 내가 방송을 하고 방송이 만들어지는 자체가 신기했어요. 자존심도 한몫했죠. 시작 동기는 소박했던 거 같습니다(웃음).

▲ 조은형 국장

든든한 네트워크, 추진력 있는 동료들… 초기 발전에 기여

황: 창신동라디오 덤은 언론에도 많이 나오는 유명 방송국인데, 시작단계에서 발전에 가장 힘이 된 요인은 무엇인가요?

조: 전 영상 쪽으로 전업한 뒤에도 창신동에 살았고, 교사 일손이 달리면 자원봉사도 하고 밥도 먹고 느슨하고 편안한 관계망이 있었어요. 창신동엔 지역아동센터가 밀집되어 관계망이 많기도 했고요. 그래서 1기 라디오 교실을 모집할 때 별 고민은 없었어요. 든든한 지원군이 있으니까요. 여전히 행사 때 응원하러 와주십니다.

황: 든든한 관계망, 응원과 지원이 있었기에 겁 없이 덤빌 수 있었던 거네요.

조: 맞아요. 덤은 콘텐츠가 많은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봉제인이 많다는 강력한 특징이 있고, 이를 반영한 방송이 있어요. 그리고 개국 멤버들이 할까 말까 고민이 많았던 만큼, 결단했을 땐 할 수 있는 이상을 했어요. 봉제인 방송은 30여 년 동안 봉제일을 해온 김종임씨가 제안한 방송이에요. 봉제인분들이 집안을 일으키고 열심히 살아온 반면 자존감은 낮은데, 이들을 쓰담 쓰담 하고 싶다는 말을 하셨어요. 운영자가 잘했다기보단 활동력 있는 멤버들 덕분에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봉제인 분들이 추진력이 강해요. ‘공개방송 하자!’ 하면 바로 자투리 천으로 조끼 만드는 식이에요(웃음). 덕분에 직장생활로 바쁘고 기술력이고 뭐고 없는 상태에서 공개방송, 음악회, 거리방송 등을 속도감 있게 추진할 수 있었습니다.

황: 든든한 지원군과 추진력 있는 동료들 덕에 안정적으로 자리잡았네요. 그리고 창신동라디오 덤이 아닌 ‘종로FM’이었으면 분명 다른 느낌일 거 같아요. 동단위 마을미디어라는 강력한 특징이 있고, 동네 주민을 주인공으로 끌어들인 게 성장비결인 거 같습니다.

 

▲ 창신동라디오덤 스튜디오

생계 활동과 병행 어려워… 민주적인 조직운영 꿈꾸며 진통 겪기도

황: 그렇다면 초기에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조: 초기엔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생계활동만으로도 벅찬데, 매일 늦은 시간에 회의를 하다 보니 잠을 잘 못 자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없었어요. 생애 최초로 두드러기가 나고 생리불순도 겪었죠. 서민들이 빠듯한 생계 활동을 하면서 삶을 잘 가꿔나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는데…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건 무리라 판단하고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으로 방송국을 하게 되었습니다.

황: 보통 직장을 가지고 활동한다는 게 어렵지요.

조: 그 와중에 민주적인 조직 운영을 갈망했어요. 수시로 연락하며 모든 사안을 공유했는데, 일하는 중에 흐름이 끊겨서 어려움이 있다고 호소하셨어요. 제가 욕심을 부린 거지요. 참여자의 부담을 낮추는 게 장기적으로 중요하다는 걸 쓰리게 깨달았습니다.

황: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도 문제지만, 너무 열심히 민주주의를 갈망하셨네요.

조: 민주주의는 기본적인 여유시간이 보장되어야 하는 거 같아요. 근본적인 토대가 갖춰져야 꽃 필 거 같아요. 현재는 선별적으로 정보를 공유하며 타협지점을 찾은 상태입니다.

 

2부에 계속>>


정리: 김푸른
사진: 박재경
녹음·편집: 박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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