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 인터뷰] 마을미디어 대표선수를 만나다 15회 – 은평시민신문 박은미 편집장 <1부>


[편집자 주] 2017 마을미디어 성과모델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정기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매체 형태의 마을미디어 15곳의 성장과정을 정리해본다. 이 프로젝트의 인터뷰어는 창신동라디오덤 조은형 국장이 맡았다. 1회 강북FM, 2회 강서FM, 3회 와보숑, 4회 동작FM, 5회 성북동천, 6회 용산FM, 7회 마을미디어 뻔, 8회 은행나루마을방송국, 9회 창신동라디오덤, 10회 라디오금천, 11회 가재울라듸오, 12회 노원유쓰캐스트, 13회 남산골해방촌, 14회 성북실버IT센터에 이어 15회 마지막 인터뷰 대상은 은평시민신문협동조합이다. 박은미 편집장과의 인터뷰를 1, 2부로 나눠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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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동라디오덤 팟캐스트 http://www.podbbang.com/ch/4565?e=22498549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가 만난 열다섯 번째 대표선수는 은평시민신문 박은미 편집장이다. 은평시민신문은 지난 2004년 ‘우리 동네에 좋은 신문이 있으면 좋겠다’고 뜻을 모은 주민들이 만든 지역 신문이다. 인터넷 신문을 시작으로, 현재 지면과 인터넷을 고루 활용하며 협동조합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역사가 긴 만큼 신문사로서 체계를 갖춰온 은평시민신문은 창간 14년 경력에 걸맞은 신문사로 도약하기 위한 고민을 쉬지 않는다.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은평시민신문은 주민들의 신뢰를 받으며 지역에 든든히 뿌리내렸다. 시민기자 생활을 거쳐 6년째 은평시민신문에서 활동 중인 박은미 편집장은 구청과 중앙언론이 외면하는 지역의 이야기를 모으고, 주민들의 목소리에 힘을 싣고자 열심히 은평구를 누비고 있다. 박은미 편집장은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으로서 마을미디어를 이야기한다. 마을미디어에 대한 획기적이고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지만, 이를 위해선 마을미디어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일도 중요한 과제임을 강조한다. 지역의 이야기를 공론화하며 문제 해결에 앞장서온 은평시민신문협동조합을 통해 마을미디어의 존재 의미를 고민해보자.

 

▲<마을미디어 대표선수를 만나다> 마지막 인터뷰이, 은평시민신문 박은미 편집장

 

2004년 인터넷 신문으로 시작, 종이신문 병행하며 협동조합으로 운영 중

조은형(창신동라디오덤 국장, 이하 조): 박은미 편집장님은 <마을미디어 대표선수를 만나다> 프로젝트 마지막 인터뷰어이십니다. 편집장님은 어떤 일을 하시는지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박은미(은평시민신문 편집장, 이하 박): 은평시민신문에서 취재도 하고, 기사도 쓰고, 신문 발송과 배송작업도 하고, 신문 발행과 운영 전반에 관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조: 은평시민신문은 역사가 깊잖아요. 마을미디어의 조상 격인 마포FM이나 관악FM보다 오래되었는데, 지난 활동과정을 시기별로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박: 은평시민신문은 창간 14주년을 앞두고 있어요. 내년이면 중학생이 되는 나이이지만, 아직도 새싹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마을미디어와 지역신문의 뿌리가 약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그럼에도 큰 성장을 거듭해 온 건 사실입니다. 은평시민신문은 매년 도약하고 있으니까요. 2004년 인터넷신문으로 시작할 때, 2009년 처음 종이신문을 시작할 때, 2013년 협동조합으로 다시 출발할 때 모두 작은 도약기였다고 봅니다. 현재 지역 조합원들과 함께 인터넷신문도 운영하고, 종이신문도 함께 만들고 있어요. 한편으론, 어떤 경계를 훌쩍 넘는 성장을 이뤄야 하는데 작은 도약만 계속되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막막한 순간, 주민의 목소리 담아 준 지역신문

조: 은평시민신문은 처음에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박은미 편집장님 개인의 동기도 궁금하고, 조직의 첫걸음도 궁금합니다.

 

박: 창간 당시 저는 은평구가 아닌 종로구에 살고 있었는데, 2005년에 이사를 와서 동네 신문이 있다는 걸 알고 신기하다고 생각한 정도였어요. 인연이 생긴 건 둘째 아이 때문이에요. 둘째가 다니던 어린이집에 문제가 생겼는데, 이 이야기를 지역에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어요. 마침 은평시민신문이 취재를 해주었고, 기고도 하게 되었어요. 이를 계기로 지역과도 가까워졌고 은평시민신문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조: 지역 신문이 주민의 필요를 채워준 거네요.

 

박: 막상 문제에 부딪히니 지역 문제를 이야기할 창구가 없더라고요. 중앙 언론에서 다뤄줄 것도 아니고, 구청에 도움 받을 수도 없던 상황에서 큰 힘이 되었어요.

 

조: 은평시민신문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박: 은평시민신문은 2004년에 인터넷 신문으로 출발했어요. ‘우리 동네에 좋은 신문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지역 주민 50여 명이 모여 힘차게 시작했습니다. 당시 사무실도 없어서 미술학원 한 켠에 책상하나 두고 시작했는데, 신문사가 갖춰야 할 시스템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어요. 당시 은평구청은 민관협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요. 취재를 가면 어디서 온 사람들이냐고 무시 받는 서러운 시간도 보냈습니다.

 

▲은평시민신문 박은미 편집장

 

마을미디어 활동에 대한 확신으로 6년째 신문 이끌어

조: 박은미 선생님은 어떻게 편집장까지 맡게 되신 거예요?

 

박: 시민기자로 참여하며 간간이 기고를 해왔어요. 나중에 기자로 일을 하다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게 되었어요. 지역이 뭔지, 신문이 뭔지, 또 주민의 목소리를 전하는 게 뭔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었죠. 그러다 2012년에 전임 편집장님이 너무 힘들어서 그만둬야겠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7~8년 차에 접어들며 체계를 잡은 상태고 후원자도 있는데 문을 닫긴 아깝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딱 3개월만 일을 하겠다고 했어요. 진짜 3개월만 하고 다른 분이 오실 때까지만 자리를 지키려고 했는데, 벌써 6년이 되었습니다.

 

조: 3개월이 6년이 된 사연이 궁금합니다. 은평시민신문의 어떤 점에 끌리신 건가요?

 

박: 은평시민신문은 자석 같아요. 육아 때문에 잠깐 일을 쉬어도 돌아오게 되고요. 제가 워낙 글 쓰는 걸 좋아해서 적성에 맞았고, 무엇보다 우리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매체가 있다는 데 매력을 느꼈어요. 신문을 만나면서 공부도 많이 하게 되었어요. 학교 사회시간에 국회에 대해 배우는데 사실 제대로 모르잖아요. 지역에서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는 과정도 잘 알려주지 않고요. 왜 이런 걸 안 가르쳐줬을까요? 진정한 민주화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봐요. 중앙의 이야기뿐 아니라 지역의 이야기도 해야 하는데, 알 수 있는 창구가 없으니 지역 신문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취재, 기사작성, 운영까지…숨 가쁘게 돌아가는 지역신문사

조: 중앙 뉴스가 얘기하지 않으면 잘 모르는 실정이죠. 함께하는 멤버는 몇 명이나 되나요? 조직 체계는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박: 이사회가 중심인데, 6명의 이사가 재정이나 방향을 고민하는 역할을 합니다. 신문 내용을 기획하고 평가하는 편집위원회가 있고, 신문을 제작하는 편집국이 있고 재정을 관리하는 사무국이 있어요. 조합원은 150명이 넘어요. 시민기자들과 함께 신문을 만들고 신문사의 역할은 그 이야기를 모으는 거죠. 상근자는 현재 두 명입니다. 격주로 신문을 발행하는데, 돌아서면 만들고 돌아서면 만들고, 숨 돌릴 틈이 없죠.

 

조: 상근자의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신문사 상근자는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합니다.

 

박: 출근해서 가장 먼저 이메일을 확인해요. 오전엔 보도자료들을 체크하고, 업데이트할 기사를 고르고 지역 현안을 체크합니다. 취재 일정이 있으면 취재를 가고요. 그날 그날 일정이 달라요. 낮엔 정보를 받아들이느라 바빠요. 하루에 50통 이상 전화를 받은 적도 있어요. 찾아오는 분들 응대하고, 전화 받고 회의하고 행사 가면 하루가 후딱 가요. 저녁엔 고요한 마음으로 기사를 쓰고요. 평일을 이렇게 정신없이 보내는지라, 주말엔 되도록 일을 하지 말자고 정해뒀어요. 근데 지역행사는 왜 이리 주말에만 열리는지요(웃음).

 

▲ 은평시민신문 박은미 편집장

 

재정 문제로 격주 발행 어려울 때 많아…올해 최초로 목표 달성

조: 과부하 걸릴 때가 많을 거 같네요. 은평시민신문은 2012년 마을미디어 사업이 시작될 때부터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곳인데, 꾸준히 활동할 수 있는 주효한 원인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박: 신문은 비용이 많이 들어요. 인쇄비, 편집비가 많이 들어서 어떻게든 신문을 계속 발행하기 위해선 지원이 절실했습니다. 2012년은 재정적으로 어려울 때였는데, 때마침 우리마을미디어문화교실 사업이 시작돼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어요. 마을미디어가 없었으면 외롭고 형편도 어려워서 문을 닫았을 텐데, 고민을 나눌 동료도 생겼고 재정에도 도움이 되었어요. 격주로 발행하니까 1년에 24번 신문을 발행해야 하는데, 올해 처음으로 목표를 달성했어요. 2012년엔 10번 정도 나왔는데, 해마다 발행 횟수가 늘어난 거죠.

 

조: 마을미디어 사업을 통해 체계화되고 안정될 수 있었던 거네요.

 

박: 재정은 아직 불안정해요. 신문은 특히나 제작비가 많이 들거든요. 마을미디어 지원사업이 선물 같고 도움도 많이 되고 자극도 주지만,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재정문제는 심각한 상황입니다.

 

▲은평시민신문 박은미 편집장

 

참여자들에게 작은 일도 의논하며 의견 피력할 기회 줘야

조: 가장 힘든 점은 재정 문제겠네요. 또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요?

 

박: 초기엔 제대로 된 사무실도 없어서 미술학원 한 켠에서 시작했고, 이후 사무실을 구하긴 했는데 사무실이 너무 무서웠어요. 너무 춥고 귀신 나올 거 같고요. 신문사임에도 제대로 된 프린터기, 컴퓨터도 없으니 각자 집에서 들고 와서 지금의 사무실을 꾸몄어요. 인건비는 자원봉사 수준이고 오히려 자기 돈 써가며 일을 했죠. 참여자와 갈등도 겪었어요. 예민한 지역의 이슈를 다루며 의견이 충돌할 때도 있었고요. 외적, 내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네요.

 

조: 인간관계 문제는 모든 조직이 공통으로 겪는 어려움인 거 같아요. 특히나 신문과 잡지는 의견충돌도 잦고, 문제 해석을 놓고 갈등이 빚어지는 거 같습니다.

 

박: 중앙 언론과 같은 위계적인 시스템이 아니잖아요. 우리 모두 주인이니까, 어떻게 중재를 해야 할지 훈련이 필요하죠. 어떤 원칙에 따라 이견을 조율할지 체계를 세워나가고 있어요.

 

조: 어떤 원칙을 세우셨어요?

 

박: 작은 일이라도 의논하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조직에서 배제된다는 느낌이 들면 가장 위기죠. 사실 급한 사람 입장에선 물어보고 하나, 내가 판단해서 하나 (어떤 면에서는) 똑같거든요. 급하고 바쁠수록 쉬운 방법을 찾게 되지만, 뜻을 함께한다면 일도 나누고 의견도 나누면서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자꾸 기회를 줘야 합니다. 그런 자리를 수시로 마련해야 해요. 내 목소리가 의미 없는 목소리라고 느끼면 서운해지고, 이 일이 의미가 없다고 느끼는 순간 여기 있을 이유가 없어지거든요.

 

조: 저도 명심해야겠네요.

 

박: 요즘은 카카오톡이 활성화되어있으니 멤버들이 보나, 안보나 계속 물어보고, 선택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기회를 주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피곤하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요.

▲왼쪽부터 창신동라디오덤 조은형 국장(진행), 은평시민신문 박은미 편집장


2부에 계속>>

 

정리: 김푸른

사진: 김용욱

녹음·편집: 나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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